5월 9일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했던 날.
배트맨 히스토리에서 배트맨이 로빈과 동성애 관계라는 누명을 쓰고 검열을 당했던 일은 유명하다. 만화 검열 위원회는 만화가 가정과 결혼의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울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그래서 배트맨 만화에서는 배트맨과 로빈이 각기 당시 기준에서 이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배트우먼과 배트걸, 배트하운드라는 개까지 추가해 하나의 가족을 결성해야 했다.
DC코믹스에서는 일찍부터 게이로 의심받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는데, 리전 오브 슈퍼히어로즈 만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엘리먼트 래드였다. 이 친구는 이성과의 데이트를 늘 어려워하고 불편해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게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78년에 여성 경찰과 연애하는 이야기를 그려넣음으로서 결국은 이성애자인 것으로 확정을 지었었다.
전환점을 이뤘던 캐릭터는 마블 알파플라이트 팀의 '노스스타'였다. 창작자 존 번 작가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멤버 중 한 명을 게이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멤버 중 누구를 게이로 만드느냐였는데,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 바보 빼고, 인종적으로 소수자 위치에 있는 인물 빼고, 뮤턴트라는 설정 때문에 괴물 취급 당하던 인물 빼고, 그러다보니 그 중에 게이로 만들 사람은 올림픽 대표선수 출신에 잘 생긴 미남 청년으로 만화 속에서도 많은 여성팬을 거느리고 다녔던 노스스타 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밝혀서넌 안 된다는 검열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정황상으로만 게이임이 확인되는 방식이었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마블 편집장을 지냈던 짐 슈터는 마블 주요 캐릭터를 동성애자로 그리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는 동성애자를 아주 위협적이고 공포스럽고, 변태적인 성도착자들로 그렸는데, 그래서 1980년 '램피징 헐크 23호'에서 브루스 배너가 두 명의 동성애자에게 겁탈의 위협을 받음으로 인해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헐크로 변신조차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쓴 바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편견이 입혀저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마블 코믹스 세계에 공식적으로 '동성애자'라고 지칭된 최초의 캐릭터였다. 이런 묘사의 배경에는 80년대 초 에이즈 공포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2년이 되면 '캡틴 아메리카' 만화에서 아놀드 로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로스는 캡틴 아메리카가 평범한 약골이던 시절에 괴롭힘 당하는 그를 구해주던 친구였는데, 어느날 그가 캡틴을 찾아와 자기 룸메이트가 납치됐다면서 구해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그 룸메이트와 로스는 법적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서로 반려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게이 커플이었다. 납치범은 레드 스컬. 스컬은 2차 대전 때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대학살을 저질렀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들 게이들을 '사회의 악이요 질병'이라고 지칭하면서 조롱하고 모욕한다. 캡틴은 로스를 구해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하고 착한 사람이야. 너의 사랑에 침을 뱉은 자들이야말로 오히려 질병이야.' 라고 말해준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진일보한 이야기였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동성애자는 캡틴과 같은 강한 이성애자 남성 히어로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 그려졌던 아쉬움이 있다.
같은 해 1982년 DC코믹스에서는 '카멜롯 3000'이라는 만화가 나온다. 미래 세계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해오자 지난날 아더왕과 기사들이 깨어나 지구를 지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트리스탄'이라는 기사가 원래 남자였는데, 여자의 몸으로 환생을 한다. 갑자기 바뀐 성별에 트리스탄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면서 남성의 육체를 되찾기 위해 마녀와 거래까지 시도하지만 실패. 결국 트리스탄은 내면의 남성의 정체성과 새로 갖게 된 여성의 몸을 모두 받아들면서 사는 길을 선택한다. 트리스탄의 연인 이졸데도 등장하는데, 트리스탄의 몸이 여자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졸데의 사랑이 바뀌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1987년 마블 알파플라이트 멤버 중에 새스쿼치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누구보다 남성적이었던 이 캐릭터가 오래 전 사망한 여성 멤버 '스노버드'의 몸에 깃들어 부활한다. 심지어 이 이야기가 장장 20여 이슈에 걸쳐서 다뤄지는 과정에서 새스쿼치는 여자로서의 육체를 받아들이고 여성의 이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새스쿼치의 외적인 성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인해 합당한 법률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도 그리면서 동성애 관련된 현실적 문제들도 반영하였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에서는 '동성부부의 법적 인정',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 철폐', '동성애자 차별 금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우선 만화 검열에서 동성애자 관련 규정들이 사라지고, 마침내 정식으로 합법적으로 슈퍼히어로들이 커밍아웃하는 스토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제일 먼저 등장한 히어로가 DC코믹스의 페루 출신 마술사 '에스트라뇨'. 노스스타는 공식적으로 게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바 없이 전체 정황성 그렇게 추정이 되었던 것이고, 에스트라뇨는 공개적으로 밝힌 첫 히어로. 그러나 에스트라뇨의 경우 여성적인 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러져서 게이에 대한 편견이 지나치게 들어간 캐릭터라는 비판도 받았다.
1988년 이후에는 레즈비언, 게이 캐릭터들이 가족관의 관계에서 당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이혼을 당하고 아이를 빼앗기고, 가족에게 거부당하는 내용들. 대표적으로 1988년 '슈퍼맨 15호'에서는 메트로폴리스의 경찰관 매기 소여를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시킨다. 매기는 처음에는 이성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었는데, 결혼생활 중에 불현듯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다. 이 이혼 과정에서 법원은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엄마 자격이 없다면서 아이에 대한 친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88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게이 아빠 이야기를 다루는데, 팀의 장비 점검을 담당하던 미치 세코프스키라는 인물이 '수어사이드 스쿼드 19호'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했다. 뒤이어진 '31호'에서는 그도 본래 아내와 아들이 있었으나 아들이 게이인 아빠를 수치스러워해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다.
마블에서는 엑스맨 만화 시리즈에서 '미스틱'과 '데스티니' 두 캐릭터가 연인 관계로 그려졌는데, 1989년 데스티니가 사망하면서 미스틱이 충격에 빠지는 일이 있었고, 또한 미스틱을 나이트크롤러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봐야 하는지 어머니로 봐야하는지의 문제를 놓고 설정이 번복되는 일들도 있었다. 미스틱은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변신이 가능했기에 마블을 대표하는 '바이섹슈얼' 캐릭터로 알려진다.
DC 캐릭터 '헬블레이저' 시리즈의 존 콘스탄틴은 게이 친구들이 많이 있는 캐릭터였다. 80년대 말 게이에 대한 편견 속에 게이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일들이 실재로 비일비재했는데, 만화속 콘스탄틴도 그런 폭행 사건에 휘말려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는 이야기가 그려졌었다. 게이를 폭행하는 자들을 일명 '게이배셔'라고 하는데, 만화는 이런 자들을 악마의 조종을 받는 자들로 묘사하면서, 퇴마 능력을 지닌 콘스탄틴이 악마들로부터 게이 친구들을 보호해준다고 묘사했다. 1992년 존 콘스탄틴은 '헬블레이저 51호'에서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1989년 그랜트 모리슨의 '둠 패트롤' 시리즈에서는 남성인 네거티브맨을 엘리노어라는 여의사와 결합시켜 '레비스'라는 캐릭터를 만든다. 남성과 외계 에너지와 여성이 하나로 결합된 존재. 레비스는 하이힐 부츠를 신고, 위에는 남성용 트렌츠 코트를 걸치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1991년 92년 '샌드맨 32~37호' '당신의 게임' 편에서는 '완다'라는 이름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등장하면서 트랜스 여성이 겪는 갈등의 양상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처음에 완다는 키가 크고 각진 얼굴에 넓은 어깨를 가진 모습으로, 자기 부모가 주위 사람들에게 늘 '우리 아들은 죽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밝힌다. 완다는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갖고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은 곧 몸이 다시 짧은 머리카락에 근육질의 몸으로 돌아가고 성기를 거세당하는 악몽으로 변한다. 내면적으론 완전한 여성이지만 남성의 몸을 가졌기 때문에 여성들에게조차도 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완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결국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을 보여주는 존재는 완다다. 완다는 죽은 후에야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데스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1992년 드디어 노스스타가 '알파플라이트 106호'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게 된다. 아울러 이전에 게이로 의심받았지만 이성애자로 확정지었던 DC의 엘리먼트 래드의 경우도 1992년에 사실 그와 사귀었던 여자 경찰이 본래 남자였지만 약을 복용해서 여성의 몸을 갖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게 된다. 엘리먼트 래드는 연인의 성별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감정은 변함없다고 밝힌다.
이제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넘어가는 시기에 DC의 '어소리티' 시리즈에 미드나이트와 아폴로라는 동성 커플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대중문화에서 연약하고 여성스럽게 그려지던 게이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어버렸는데, 아폴로는 슈퍼맨급의 막강한 초능력을 지닌인물이고, 미드나이터는 뛰어난 지능과 전략을 겸비한 전투의 달인. 두 사람은 전투 현장에선 누구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반면 둘만 있는 시간에는 여느 연인처럼 다정하다. 이런 캐릭터가 나오던 시기가 마침 네델란드에서 동성결혼과 동성부부의 자녀입양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시행에 들어간 2000년 2001년 무렵이었으니, '어소리티' 작가였던 워런 엘리스는 아예 2002년에 이 커플을 결혼시켜 자녀까지 입양하는 스토리를 써버린다.
2001년 '그린랜턴 137호'에서는 그린랜턴이자 평상시에는 화가로 살고 있는 주인공 카일 레이너가 동성으로부터 감정에 반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카일의 조수인 16살 소년 테리가 남자인 카일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 카일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몰라서 여자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면서도, 테리의 감정 또한 잘못된 거이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몇 이슈 뒤에는 테리가 자기 부모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하다가 집에서 쫓겨나고, 게이 혐오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는데, 이런 이야기 자체로 당시 언론의 주목도 꽤 받았었다.
게이 레즈비언에 대한 배척은 2003년 '고담 센트럴 6호'에서 경찰 르네 몬토야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과정에도 그려졌는데. 르네의 커밍아웃이 이뤄지자마자 경찰 게시판에 그네가 다른 여성과 키스하는 사진이 올라온다. 이로 인해 르네는 경찰서 내에서 살인 용의자로 몰리는 등 어려운 일들을 겪는다.
그러면서 이제 어릴 때 성정체성을 자각하는 소년 소녀들이 많이 그려지게 되는데, 2003년 마블 코믹스의 '런어웨이즈' 시리즈에서는 카롤리나 딘이라고 하는 레즈비언 소녀가 등장했고, 같은 해 '뉴 뮤턴트 2호'에서는 앤올이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다. 앤올은 2012년 가서야 게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또한 2005년 마블의 '영 어벤저스' 시리즈에서는 팀의 핵심 멤버인 헐클링과 위칸 두 십대 소년을 공개적인 게이 커플로만들었다.
때마침 이 2005년이 캐나다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었던 해다. 또한 미국에서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동성결혼을 금지하자는 헌법 수정안이 계속 올라왔지만 이 시기에 거듭 부결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LGBT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 브라이언 K 본 작가가 쓴 '엑스마키나'라는 작품에서는 히어로 출신으로 뉴욕 시장이 된 주인공 미첼 헌드레드가 동성 결혼식 주례를 보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뉴욕 시장이 동성결혼 주례를 맡아야 하느냐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지만, 미첼은 동성결혼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주례역을 완수한다.
2006년 DC코믹스의 '52 7호'에서는 배트우먼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배트우먼은 애초에 배트맨에게 씌워졌던 동성애 혐의를 벗기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캐릭터로, 심지어 이 해는 배트우먼 탄생 50주년 되는 해였으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향한 묵직한 한방과도 같았다. 이야기상에서 배트우먼은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쫓겨났는데, 이 당시 실제로 미국에서 존재하던 'Don't Ask, Don't Tell' 방침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방침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은 군복무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2011년에 가서야 폐기된다.
2006년 앨런 무어는 '탑 텐 포티나이너즈'라는 만화에서 젊은 파일럿과 베테랑 파일럿 두 사람이 서로 동성커플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아이즈너상을 수상했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2004년부터 메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주가 계속 늘어나기 시작한다. 2012년 그동안 마블의 대표 게이 히어로였던 노스스타가 '어스토니싱 엑스맨 51호'에서 비로소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고, 같은 해 2012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공식적으로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했다. 2015년에 이르면 미국 모든 주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게 된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 문제는 여전히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남았다. 2016년 올랜도주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총격테러가 일어나 49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같은 해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짐 리, 조나단 힉맨등 한국 만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을 포함 수많은 만화가들이 혐오를 물리치자며 'Love is Love'라는 만화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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