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자에 킬레이븐 이야기를 했었는데, 킬레이븐 만화가 나오던 시기, 73년부터 78년까지는 드라마 '6백만 달러의 사나이'가 대히트를 쳤던 시기다. 6백만 달러의 사나이 스핀오프로 '소머즈'도 나왔고, 두 드라마 모두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거두었었다.
이렇게 인기있는 드라마가 나오면 만화 출판사들을 그것을 앞다투어 만화화해 이익을 챙기는 데 관심을 두었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도 여러 출판사가 그 만화화 권리를 서로 갖기 위해서 각축전을 벌였었는데, 마블도 여기에 참여했었다. 마블은 이전에도 '혹성탈출'을 흑백 만화로 냈던 적이 있었다. '커티스 매거진즈'라고 하는 임프린트를 이용해서 흑백 매거진 형태로 출간을 하면, 당시의 만화 검열제도의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성적인 장면들을 자유롭게 내보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드라큘라'나 샹치가 나오는 '데드리 핸드 오브 쿵푸', 야만인 코난이 나오는 '새비지 테일즈' 등이 모두 이런 형식으로 나왔었는데, 그 라인에 1974년 마블판 '혹성탈출'도 들어갔던 것이다. 검열 밖에 있었던 만큼 인기를 더 잘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그래서 마블에서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에도 큰 의욕을 갖고 달려든다. 그러나 경쟁 끝에 당시 '찰튼 코믹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 좋은 아이템을 놓치다니! 낙심할 만한 일이었지만, 때마침 '더그 먼치'와 '리치 버클러'. 두 작가가 자신들이 만든 사이보그 캐릭터 하나를 내밀었다. '더그 먼치'는 배트맨 시리즈나 샹치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리치 버클러'는 블랙 팬서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사이보그라는 소재가 인기를 얻으면서 '데스록'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해 놓았지만 마블이 '600만 달러의 사나이'를 손에 넣으려 하는 상황에서 데스록을 내밀어봤자 그늘에 가려질 게 뻔했고, 그래서 숨겨두고 있었는데, 마침 600만 달러의 사나이가 찰튼에 넘어가버렸으니 오히려 이 작가들에겐 기회가 된 것이었다. 물론 검증되지 못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바로 '데스로 1호'를 내놓지는 못한다. 대신 '어스토니싱 테일즈'라는 만화에 몇 편을 내놓기 시작한다.
이전의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만화들은 카만디처럼 핵전쟁으로 멸망한 세계라든지, 킬레이븐처럼 생화학 무기,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 세계 등을 주로 그렸지만, 데스록의 경우는 기계 문명의 발전 속에 인간성의 자리마저도 기계에게 빼앗기고 마는, 사이보그의 디스토피아 이야기를 그렸다.
사이보그라는 컨셉 자체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에서 얻은 것이었지만, 발상이나 주제의식 자체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생일이 5월 11일이다.) 갑자기 달리가 왜 튀어나오느냐 싶겠지만, 달리의 작품 중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작품이 있다. 대표적으로 1951년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위에서 내려다본 '십자가에 달린 성요한의 그리스도(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라는 작품이 있고, 1954년에는 '십자가 책형 초입방체의 시신(Corpus Hypercubus)'라고 일반적 십자가와는 다른 특이한 초입방체의 십자가가 공중에 둥둥 떠서 사람을 매달고 있는 그림이 있다.
데스록 작가들은 달리의 초입방체 십자가를 보곤 중력을 거스르는 신비로운 기술 문명 위에 인간이 매달려 있는 모양을 떠올렸고, 거기에서 데스록을 착안한다. 그래서 데스록은 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하지 않을 때는 늘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파괴된 도시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인간의 모습은 이미 죽었지만 기계의 힘을 빌려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보그 데스록의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다.
데스록이 살아가는 시대는 세상의 모든 슈퍼히어로가 대부분 죽거나 추방당해 사라진 세상이다. 뉴욕 맨해튼은 어딘가로부터의 공격을 받아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파괴된 폐허 위에는 라이커라고 하는 미친 권력가가 일어나는데, 라이커는 온 세상을 기술로 지배하려는 야심을 가진 자다. 온 세상의 통신망을 감시함으로써 완벽한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발상. 그 암울한 미래에서 주인공 '루서 매닝'은 라이커에 의해 사이보그 데스록으로 개조당하고, 끝없이 나는 인간인가 괴물인가를 되물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후에 1983년 '캡틴 아메리카 288호'에서는 이런 오리진에 마블의 거대기업 록손이 배후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슈퍼빌런 레드 스컬과 오직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대기업 록손이 지구상에서 슈퍼히어로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들이 슈퍼히어로 제거를 위해 사용한 방법은 일명 '제 N 프로젝터'라고 하는 장치. 작은 소총 형태의 이 장치는 표적을 다른 차원으로 순간이동시켜 버리는 장치다. 록손과 레드스컬은 자신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지구 히어로들을 절대 빠져나올 수도 없고 사람이 생존하기도 힘든 다른 차원,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제거한다.
문제는 이 장치를 사용하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던 것. 히어로 제거에 몇 년치의 에너지를 써버린 나머지, 이후 정치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대는 첨단 기술이 아닌 재래식 기술을 이용한 싸움을 해야 했다. 그래서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못하고 장기간의 내전으로 이어지고, 그 여파가 세계 곳곳 크고 작은 전쟁으로 확산된다.
이러다 보니 이제 적도 아군도 불분명해지고, 어느 새부턴 가는 마치 군웅할거시대처럼 저마다의 세력이 난립해 각자의 이익을 좇아 난전을 벌이는 상황이 돼버리고, 결국 어디서 날아온 지도 모르는 미사일, 누가 왜 누굴 겨냥해 쐈는지도 모를 미사일들이 발사되어 미국 최대도시 뉴욕을 비롯해 미국 주요 도시들을 날려버린다.
이때 '라이커'라는 과학자가 미국의 CIA와 여러 기업들의 지원 하에 사이보그 군대 개발 연구에 들어간다. 라이커는 사이먼 라이커와 할란 라이커 형제 과학자였는데, 형인 사이먼은 사이보그 군대를 이용해 전 세계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동생 할란은 사이보그야 말로 가장 완벽한 지성이므로 인류를 아예 전부 사이보그로 대체하겠다는 꿈을 꿨다. 데스록은 이런 기본 배경에서 이전의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들과는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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