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4월 26일 - 메디치 가문의 배트맨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오늘의 코믹스

by 오늘의 코믹스 2024. 4. 26. 15:51

본문

역사 속 파치 음모 사건

4월 26일은 일명 '파치 음모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다. 오늘은 드물게 이 시대를 다룬 배트맨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우선 실제 역사.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 가문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이 가문은 선대부터 은행을 차리고 금융업을 통해 큰 돈을 벌면서 재력을 통해 15세기 이탈리아의 정치 흐름을 좌우하는 큰 가문으로 성장을 했다. 특히 4대에 해당되는 로렌초 데 메디치 때는 최전성기에 이르렀는데, 이 시기에 유럽에서 메디치 가문의 돈을 빌려스지 않는 왕은 없다고 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는데, 그 위세는 마냥 재력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라 뛰어난 외교력 정치력 화술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신망, 인간적인 매력, 피렌체 시민들로부터 얻는 호감 등 여러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 로렌초 데 메디치는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키웠는데, 미켈란젤로나 보티첼리 같은 사람들이 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서 안정적으로 많은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로렌초 데 메디치의 위세가 커지다보니까 다른 거대 가문들 입장에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파치 가문'이라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예 로렌초 데 메디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로렌초를 죽이고 우리가 피렌체의 정권을 차지하자! 그래서 1478년 4월 26일 피렌체 대성당에서 거사를 실행한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사제들 손에 칼을 쥐어줘서는 로렌초와 로렌초의 6살 어린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죽이도록 한 것이다. 다행히 로렌초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동생 줄리아노는 몸을 여러번 찔려 사망하고 만다.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고, 범인들은 붙잡혀 처형을 당했다. 당시에 창문에 매달린 범인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보고 스케치를 남겼다. 

 

만화속 골목에서의 줄리아노의 죽음. 실제 역사 속 교회에서의 줄리아노의 죽음

 

 

90년대 DC코믹스. 다빈치에 대한 관심 - 배트맨 블랙 마스터피스

 

1994년 이후  DC코믹스에서는 다빈치 관련해서 2편의 작품을 출간했다. 하나는 '버티고'에서 낸 '키아로스큐로(Chiaroscuro)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의 10이슈짜리 시리즈. 1995년~1996년에 걸쳐 출간되었는데, 다빈치의 제자였던 '살라이(Salai)'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려나갔다.

1995~1996년. 버티고의 키아로스큐로. 다빈치와 살라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라이벌 관계 등을 그린 만화

 

또 하나는 1994년에 배트맨 애뉴얼 18호로 나온 '엘스월드' 작품 '블랙 마스터피스'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는 피렌체를 배경으로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배트맨과 연관시켜 이야기를 펼쳤다. 작가는 당시 매트맨 작가로 유명한 '더그 먼치'였다. 이 당시에 더그 먼치가 쓴 엘스월드 작품으로 유명한 게 배트맨과 드라큘라 트리로지의 첫 작품인 '레드 레인'이 1991년에 나왔었고, 1994년에 그 후속작으로 '블러드스톰'. 그리고 이 뱀파이어 트릴로지를 함께했던 그림작가 켈리존스와 함께 만든 또 다른 엘스월드 작품으로 역시 94년작인 '배트맨 다크 조커 - 더 와일드' 등을 연이어 내던 시기. 94년에게 더그 먼치가 낸 엘스월드 작품이 지금 꼽은 것만도 벌써 세편이었다. 

 

'블랙 마스터피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던 시기, 그의 걸작 모나리자와, 그의 조수 '살라이', 그리고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 등에 속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재료로 삼아서 적당히 버무려 만든 가상 역사다. 그래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도 꽤 있다. 작가는 배트맨을 위해서 여러 재료들을 꽤나 복잡하게 끼워맞췄다. 어쨌건 이야기는 위에 정리한 파치 음모 사건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역사 VS 만화

첫 장면에 적힌 연도는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후원자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의로받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두 명인데 한 명은 앞서 이야기한 파치 음모 사건에 죽은 인물.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인 줄리아노다. 또 한 명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 두 명의 줄리아노가 조카 삼촌 관계인데, 그 중에 조카가 사실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후원자였다.

 

만화속 장면. 실제 줄리아노 메디치는 두 사람이 있는데, 조카가 다빈치의 후원자였다. 
수태고지. 만화 속에서보다 15~20년 앞서 그려졌다.

 

조카 줄리아노는 1516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이후 1517년에 레오나르도의 집을 찾았던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고 줄리아노 메디치 각하의 요구에 따라 그리고 있었다는 한 피렌체 여인의 초상화를 보았다고 했다. 그 그림이 모나리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레오나르도는 본래 조카 줄리아노의 후원을 받았던 것인데, 여기서 더그 먼치는 두 명의 줄리아노를 슬쩍 겹쳐버린다.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후원하는 것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줄리아노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그의 초기작인 '수태고지'다. 수태고지는 원래는 1472~1475년에 그린 그림. 원래 줄리아노에게 의뢰받은 그림도 아니고, 피렌체 몬테 올리베토 수도원의 의뢰를 받아 수도원 내에 있는 산 바르톨로뮤 예배당의 제단화로 그린 그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삼촌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1478년에 사망했지만, 만화에서는 그의 사망 연도를 12년 뒤로 미뤄서 1490년으로 만들었다. 실제 역사에서 암살 당할 당시 나이 25세, 미혼이었던 줄리아노는 사망 연도가 12년 밀리면서 아내가 생기고 아들이 생겼다. 

 

만화소 토마스 메디치의 어머니 모습과 시모네타를 모델로한 그림들. 오른쪽이 찬가의 성모. 

 

역사 속에서 줄리아노는 시모네타 베스푸치라는 동갑내기의 미인을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시모네타는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미인이었다. 그래서 메디치 가운이 후원했던 대표적인 화기인 '보티첼리'의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시모네타 베스푸치. 보티첼리의 유명한 작품들 '비너스의 탄생'부터 '여인의 초상' '찬가의 성모'등 많은 작품에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보티첼리 또한 그녀를 몰래 사랑했다고 한다. 만화 속의 시모네타 베스푸치는 '찬가의 성모'에 그려진 얼굴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 속 시모네타는 사실 줄리아노보다 2년 일찍 23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여기서는 죽지 않고 줄리아노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의 아들의 이름은 '토마스 데 메디치'. 배트맨 만화 속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브루스라는 이름 대신 토마스라는 이름을 쓴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사용이 가능한 이름이었지만, 브루스라는 이름은 기원 자체가 영국 쪽에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배경의 이야기에 써 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여하튼 그래서 만들어진 '토마스 데 메디치'라는 캐릭터는 만화속 연도로 1490년. 부모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시모네타 베스부치는 다빈치의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암살자들의 칼에 사망한다. 홀로남은 토마스 데 메디치는 다빈치의 후원자인 동시에 제자로서 다빈치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실제 역사속 후원자였던 조카 줄리아노의 역할이 토마스에게로 넘어간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자라는 역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살라이 어린시절, 만화속 토마스와 다빈치. 역사속 다빈치와 살라이

 

 

 

여기에서 이 연도를 1490년으로 맞출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진다. 실제 역사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 '살라이' 본명 잔자코모 카프로티가 10살 나이로 다빈치의 견습생이 된 연도가 1490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실제 인물을 분배해서 가상의 인물에 입혔든간에, 토마스 데 메디치의 본바탕은 다빈치의 제자이자 '동성연인'이기도 했던 '살라이'인 것이다. 

 

자. 이제 토마스의 성장기를 건너 뛰어 시간은 13년이 더 흘러 1490년에서 1503년이 된다. 성인으로 성장하여 다빈치를 돕고 있는 토마스. 다빈치의 제자로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보이지 않아 좌절 중이다. 마침 다빈치의 화실에 한 부인이 찾아와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 부인의 이름은 리자. 다빈치는 그녀를 모나리자라고 부른다. 실제 역사에서 모나리자의 모델로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 인물이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라는 인물인데, 남편은 피렌체에서 비단 사업을 하던 조콘도(Giocondo)라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모나리자 그림의 이탈리아 제목은 '조콘도 부인'이라는 뜻으로 '라 조콘다'라고 불린다. 

 

커버. 모나리자 왼편에 그려진 배트맨 그림, 스승의 사랑을 보며 어두운 자신의 그림을 지워주는 토마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가 일설에 따르면 사실 모나리자의 모델은 '리자 게라르디니'가 아니라 다빈치의 제자이자 동성연인이었던 '살라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나리자 속에는 '조콘도 부인'과 '살라이'가 어쩌면 모두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더그 먼치 작가는 만화 속에서 모나리자 그림 속에 두 사람을 모두 그려넣는데, 살라이 대신 살라이의 역할을 담당시킨 '토마스 데 메디치'가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모델이 납치되고,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던 토마스는 그간 레오나르도가 만들었던 여러 기계장치들을 배트맨 옷과 함께 갖춰입고서는 그녀를 구하러 간다. 그곳에서 만난 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 토마스는 부모의 원수를 갚고 스승의 연인을 구출해주며, 다빈치와 조콘도 부인은 사랑이 이뤄지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르네상스 버전의 배트맨, 레오나르도의 비행장치를 이용하는 공중침투.

 

워낙에 너무 많은 사실들을 실제 연도와 어긋나게 만들어 끼워붙여 꽤 어지러운 작품이지만, 배트맨이 좋아 보는 김에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나 메디치 가문 관련해서 역사와 미술사를 살피는 재미가 나쁘진 않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