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은 누구나 들어봄직한 그 이름. 영국의 그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이 탄생한 날이다. 올리버 크롬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마치 우리나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라를 건국한 국부냐 아니면 독재자요 잔인한 학살자냐로 갈리듯이, 크롬웰 또한 왕정을 물리치고 공화정을 이룩한 영웅인가 아니면 청교도 근본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잔인한 독재자인가 평가가 갈린다. 그래서 영국의 어느 곳에는 올리버 크롬웰이 없었다면 공화정이 없었을 거라며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지고 초상화가 걸렸지만, 반대로 그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한 사람의 후손들은 그의 얼굴만 봐도 치를 떤다고 한다.
DC코믹스에서 엘스월드 첫 작품을 꼽아보라고 하면 보통 마이크 미뇰라가 그린 '고담 바이 개스라이트'를 꼽는다. 1990년에 출간된 이 책은 마이크 미뇰라가 헬보이를 그리기 이전에 그린 빅토리아 시대 배경의 작품이었다. 기존의 배트맨 만화와는 시대배경과 설정이 완전히 달랐던 만큼 비록 표지에는 '엘스월드'라는 엠블렘이 없었어도, 보통은 이 작품을 최초의 엘스월드로 꼽는다.
공식적으로 엘스월드 엠블렘을 달고 나온 작품은 1991년의 '배트맨 : 홀리 테러(Holy Terror)'였다. 이 작품은 올리버 크롬웰이 17세기 영국에서 세운 공화국이 그대로 유지되어온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크롬웰이 찰스 1세의 목을 베고는 왕정을 철폐하고 공화국을 세우고는 스스로 '호국경'이라는 직함을 갖고서 종신독재체제에 들어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 왕을 지지했던 세력들을 잔인하게 처단했는데. 그 공화국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크롬웰이 갑자기 말라리라에 걸려서는 사망해버린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어이없이 사망하자 공화정은 무너진다. 크롬웰은 청교도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가혹할 정도로 경건하고 성스러운 삶을 강요했었다. 그래서 춤도 금지, 노래도 금지, 술도 금지, 도박도 금지. 금지된 것들을 하다가 발각되면 엄청나게 과도한 벌금을 때리거나,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아니면 잡아서 가두거나. 처벌했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왕정과 공화정이 왜 다르냐. 권력을 쥔 놈이 왕이든 호국경이든 우릴 괴롭히는 건 똑같은데 못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물론 정치적으로 따지면 더 복잡한 이권 관계나 정치적인 다툼이 있지만, 이 부분이 굉장히 컸다. 그래서 크롬웰이 죽은 후에 결국 영국은 다시 왕이 다스리는 사회, 왕정국가로 돌아간다. 이걸 일명 역사교과서에서 '왕정복고'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배트맨 홀리테러'에서는 크롬웰이 말라리에 걸렸으나 죽지 않고 건강을 잘 회복해서 영국의 공화정을 탄탄히 이끌어서, 강력한 청교도 국가로 만들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 세력이 영국 밖 신대륙까지 뻗어서는 이제 아메리카에도 청교도 식민지가 건설된다. 이 식민지는 신정체제의 완벽하게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규율하에서 엄격하게 치안이 유지되며 발전한다. 청교도 근본주의자들은 비단 음주가무만 금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도 굉장히 차별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나온다. 그래서 가령 특정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죄인들이었다. 오늘날도 문제가 되고 있는 낙태 문제. 교회는 원치않는 출산으로 인해 죽어가는 여성들을 삶을 보지 못하고, 피임도 범죄시하고 낙태도 범죄시했다. 성소수자들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순리를 거스르는 무도한 죄인들이고, 장애인들은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 보았다. 그래서 당연히 이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흉하다는 이유로 거리에 나다니지 못하게 가둬두거나, 신을 거역했다며 잡아서 처형했다.
사람들 중에는 낙태하는 여성들이나 성소수자나 장애인들이 죄없이 핍박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 생각을 드러내면 그들 또한 처벌받았는데, 남 모르게 이들을 감싸며 돕던 자들 중에 '토마스 웨인'과 '마사 웨인' 부부가 있다. 청교도 근본주의자들에게 이들은 눈엣가시였다. 티나게 드러내며 행동하지 않았기에 딱히 처벌할 방법이 없자, 이들은 뒤에서 암살을 모의한다. 사람을 시켜 이들 부부를 죽이고는 교회 권력으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수사를 못하게 막았다.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던 제임스 고든은 혼자서 몰래 그 배후를 캐며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지난 후, 죽은 부부가 남기고 간 아들 '브루스 웨인'이 성장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된다. 브루스 웨인 역시 청교도의 엄격한 규율들을 지키라 교육받았지만, 그에게 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누구나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브루스는 기존 청교도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어느날 브루스는 부모의 죽음과 관계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낮에는 사제로, 밤에는 부모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배트맨으로 살아간다. 활동 중에 그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붙잡혀 감금당하고, 부당한 인체실험까지 당하고 있는 수많은 초인들이 지하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배트맨이 그들을 감옥에서 풀어준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진 않는다. 사회 자체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신앙, 사상, 이념이 바뀌지 않는 한, 앞에서는 성경을 내밀고 뒤에서는 성경을 근거로 들어 특정인들을 죄악시하고 혐오하는 근본주의를 무너뜨리지 않는한은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위에 링크를 건 라이언 화이트와 HIV감염 관련 글에도 소개를 했지만, 90년대 초 미국 만화계는 게이 캐릭터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HIV 환자들의 죽음을 다루는 만화들을 많이 내면서 사회에 팽배했던 왜곡된 믿음과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들을 계속 했었다. 어떻게 보면 1991년의 홀리 테러는 차별받는 사람 이전에 차별을 조장하는 뿌리가 무엇인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만화로서 90년대 이러한 만화들의 흐름 위에 나란히 놓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관련글1 : 장애인을 거리에 나다니지 못하게 했던 어글리법
관련글 2 : HIV 감염으로 인하여 학교에도 갈 수 없었던 소년 라이언 화이트와 마블 만화 이야기
관련글 3 : 피임 방법을 가르치며 여성의 목숨을 지켰던 마가렛 생어 이야기
관련글 4 : 참정권을 얻기 이전 여성들의 삶과 죽음
관련글 5 : 마틴 루터 킹과 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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