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나 교사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도 않았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듣는 말들처럼 '부모나 선생이 애들을 훈계하기 위해서 때리는 데 뭐가 잘못이냐.'였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시기에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만들어지고, 아동을 지키기 위한 법을 만들자는 운동이 이뤄지고 했었는데, 아동에게 가장 밀접한 매체였던 만화책, 특히 마블 만화책도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에 맞춰서 아동보호 단체와 함께 아동보호캠페인용 만화도 만들고, 또 그들 만화 속의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학대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넣기도 했다.
우선 1982년 '마블 그래픽 노블 4호'. '뉴 뮤턴트'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슈였는데, 이 이슈는 늑대로 변하는 소녀 라니 싱클레어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니는 횃불든 남성들에게 뒤쫓기는데, 이유는 그 몸에 악령이 깃들었다는 이유다. 추적자들의 선두에는 성경책을 든 목사가 서 있는데, 이 목사가 실은 라니의 아버지다. 우연히 쓰러진 아이를 발견한 맥태거트 박사는 아이를 그들에게서 지켜주려 하는데, 목사는 당장 아이를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런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에는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이 있다. 이전까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자유세계를 지켜온 기성세대에 60년대 70년대 젊은 세대들의 문화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유를 위한 전쟁을 반대하고, 이상한 음악을 듣고,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춤을 추며, 열심히 공부해야 될 학교를 점거해서 불을 지르고. 미국을 지켜주신 선하신 하느님이 아닌 이상한 신을 믿는 자들, 동양의 종교에 심취하고,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적 세계관에 빠져들고, 악마의 힘을 소환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악마의 세계를 가까이하는 자들도 생겨난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젊은 세대.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세대. 그들에게 이들 세대는 어찌보면 '악령에 깃든 세대'와도 같았다.
그래서 영화 '오멘(1976)'이 개봉했을 때, 사탄이 인간의 아이를 통하여 세상을 정복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공포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였다. 사탄의 자식을 방불케하는 패역한 세대, 온갖 죄악된 것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이 볼 때는 다분히 신성모독적인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 세대는 '엑소시스트(1973)'의 주인공처럼 '어재서 저 착한 아이가 악령에 깃들었을까' 속히 '엑소시즘'을 행해 구원해줘야할 세대였다. 그러나 영화가 후속작이 계속 나오는 것처럼, 이 세대에 대한 퇴마 의식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끈질기게 돌아오고 돌아온다. 컬럼비아 대학이나 켄트 대학 사건에서도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성실하게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간 착한 아이들을 폭력 시위대로 바꿔놓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악한 어떤 세력이 아이들에게 악을 퍼뜨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공산주의 세력이 이 사회 어딘가에 잠입해서 아이들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에서 그치지 않고, 사탄을 숭배하는 종교집단에 대한 광기어린 공포로 이어진다. 실제로 살인마 찰스 맨슨의 악행과 악마 숭배 같은 실제 사건의 충격도 이런 공포를 더 불타게 했다. 복음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권과 가까이하여 사회적인 정화를 이루려는 그런 움직임도 늘어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이전에 비해 더 크게 늘어난 시기였다. 맞벌이 가정이 늘고, 여성들은 어린 아이들을 요즘으로치면 주간돌봄센터에 맞겨놓고 일터로 나갔다. 엄마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아이를 떼어놓고 왔다는 죄책감부터, 과연 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있을까하는 의심. 그런데, 그런 것들이 커지면서 결국 사건이 하나 터진다.
그것이 그 유명한 1984년 맥마틴 유치원 사건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강제로 사탄 숭배 의식을 시킨 혐의, 성적 학대를 가한 혐으로 기소 된다. 처음에 만 2세 아이에게 배변 장애가 발견이 되었는데, 부모는 아이의 진술을 근거로 해서 아이가 유치원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서 해서는 안될 행위들을 하고, 사탄의 의식을 했다는 소문들이 퍼지고, 인근 유치원들까지 문을 닫는다. 수년간 재판이 이뤄졌지만, 이들이 소문과 같은 짓을 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진술을 얻어낸 방식 또한 대부분이 특정한 답을 유도한 방식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그러나 아동학대에 대한 진술과 고발이 마녀사냥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60년대 이후로 소아과 의사들이 아이들이 다쳐서 병원을 찾아오면 어떤 것이 아동학대에 의한 것인지 주의깊게 보면서 연구하기 시작한다. 정보가 의사들 사이에 공유되고, 아동학대 정황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신고의무를 의사에게 부여하는 법도 생겨난다. 여러 연구 결과 다수의 아동학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74년에는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77년에는 아동이 어른들에게 많은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발표도 나온다.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대하다니? 부모가 자기 자식들을 바로 키우기 위해서 매를 드는 것이 학대에 포함되다니? 그렇게 생각해서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매질을 당하며 사는 아이들도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서 매를 드는 것이 아동학대라니? 그러나 훈육과 상관없이 아이를 때려잡는 교사도 많은 것으로 드러난다. 이제 아동학대를 막고 어린이를 보호하는 단체와 기관이 생기고,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체계적으로 법을 보강하는 움직임이 커진다.
만화 속에서도 만화 캐릭터들을 통해서 아동학대가 결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85년 '인크레더블 헐크 312호'에서는 브루스 배너가 어린 시절 아동학대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브루스 배너의 아버지를 특이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흔히 남성들이 결혼하며 겪는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아내와 단둘이던 신혼생활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나자 모든 리듬이 흐트러진다. 직장 경력에도 지장이 생기고, 아내의 관심도 오직 아이에게만 향한다. 심지어 아이를 낳는 과정에 난산으로 인해 아내가 목숨을 잃을 뻔하는 상황도 겪는다. 태어난 아이는 그가 이전에 생각하던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 그가 자라왔던 어린 시절과는 다른, 흔히 '요즘 아이는 뭐든지 빨라'라고 하는 말처럼, 너무나도 지적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는 아이. 아버지는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모든 분노를 아이에게 푼다. '너는 괴물이야!' 이전까지 만화팬들이 알던 브루스 배너는 그 모든 분노와 폭력을 온몸으로 받고 자란 아이였다. 이러한 오리진은 헐크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에 완전히 새로운 성격을 부여했다.
앞서 소개한 뉴뮤턴트의 데뷔 연도는 1982년. 데뷔는 '마블 그래픽노블 4호'로 데뷔했지만, 83년부터 정규 시리즈가 출간되기 시작해 1991년까지 거의 100이슈에 걸쳐서 이어졌었다. 뉴 뮤턴트는 1호부터 54호까지 크리스 클레어몬트 작가가 썼는데, 주요 내용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십대라는 특수한 시기에 맴버들과 갈등을 겪어가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함께 시련을 헤쳐나가면서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이런 시기에 자비에 교수의 아들인 리전, 굉장히 강력한 뮤턴트지만 정신적으로 불안한 리전이라는 캐릭터도 등장을 하고, 얼마 후에는 자비에 교수 대신 매그니토가 팀 리더 자리를 넘겨받는다. 그런 다음에 '뉴 뮤턴트 55호' 부터는 루이스 사이먼슨 작가가 이 시리즈를 넘겨받는다.
당시에 엑스맨은 '다크 피닉스 사가'로 진 그레이가 죽은 다음에 원년팀 사이클롭스, 비스트, 엔젤, 아이스맨 등의 엑스맨들은 어디 마땅히 낄 자리가 애매했다. 언캐니 엑스맨은 울버린, 스톰 등을 중심으로 팀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그 다음 세대인 '뉴 뮤턴트'는 그들대로 잘 되고 있었으니 원년 멤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로 남은 상태. 그래서 이 때 등판하는 작가가 누구냐. 얼마전에 한국에도 찾아오셨던 아이언맨의 작가님으로 유명하신 '밥 레이튼' 작가님이다. 이분이 엑스맨 사랑이 극진했던 엑스맨 팬이었던 터에 오리지널 엑스맨 멤버들이 이대로 사장되는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편집장 '짐 슈터'를 찾아갔던 거다. '우리 원년 멤버'만 모아서 팀 하나 꾸려봅시다. 그래서 '엑스팩터'라는 이름으로 원년 멤버를 재결성한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진 그레이의 죽음. 진을 부활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 그리고 진을 잃고 괴로움에 빠진 사이클롭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안이 난무하다가 결국 진을 부활시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사이클롭스는 날벼락을 맞게 된다. 당시 크리스 클레어몬트 작가는 이제 사이클롭스는 진을 닮은 매들린이라는 여성과 결혼해 아이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결말맺고 보내주자라는 입장이었는데, 마블에서 진을 부활시키로 해버렸으니, 사이클롭스의 과정은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진의 부활과 함께 매들린도 버림받고 아기도 버림받고, 그렇게 충격의 '엑스팩터 1호'가 시작된다. 이 엑스팩터도 시작은 밥 레이튼의 제안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이후 6호부터 64호까지, 86년부터 91년까지 루이스 사이먼슨 작가가 전담한다.
루이스 사이먼슨은 남편이 토르의 작가로도 유명한 '월트 사이먼슨'인데, 70년대에 둘이 교제를 하다가 1980년에 결혼을 해 성이 사이먼슨으로 바뀐 것이다. 이분이 80년대 뉴 뮤턴트, 엑스팩터 이런 시리들의 스토리작가로 일하기 직전에 원래는 편집자였다. 마블에서 일하기 전엔 워런 퍼블리싱에 있다가, 마블로 넘어와서는 그 유명한 '다크 피닉스 사가'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같은 작품들이 모두 이분 손을 거쳤고, 뉴 뮤턴트도 초창기에 클레어몬트 작가님이 글을 쓰던 시기에 이분이 편집을 맡았었다. 그러다가 돌연 편집자를 그만두고 프리선언을 하고 스토리 작가가 되는데, 이 때 맨 처음 낸 작품이 바로 '파워팩'이었다.
'파워팩'이라는 만화 자체는 어린이 네 명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어서 여러가지 신기한 모험을 하고 사건을 해결하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은근히 그 시대의 사회적인 이슈들도 많이 담겼던 만화였고, 반응도 대단해서 여러 만화상들을 수상하게 된다.
파워팩 주인공들이 어린이였다보니, 마블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아동학대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아동학대방지 관련 기관에 연락을 취해서 마블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 스파이더맨과 어린이 히어로팀 파워팩이 모두 등장하는 아동학대 방지 만화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1983년 '스파이더맨과 파워팩'. 맥마틴 유치원 사건 신고가 접수되고 불과 몇개월도 되지 않은 때에 만들어져 배포된 만화였다. 므게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앞의 스파이더맨 이야기는 짐 샐리크럽 작가가 뒤의 파워팩 이야기는 루이스 사이먼슨이 썼다.
한 소년이 베이비 시터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마침 스파이더맨이 그 소리를 듣고 아이를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데, 부모가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보호하려면 아이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네가 용기를 갖고 증언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야기.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외로웠던피터 파커가 우연히 자신에게 아주 친절하게 잘해주는 형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많이 친한 사이가 된 후 그 형이 피터에게 성추행을 하고, 피터가 용기 내어 하지 말라고 말하는 내용.
한 소녀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괴로워하다 가출한다. 가출한 아이는 파워팩의 가정에 발견되어 보호를 받지만, 역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구체적인 증언이 필요하므로 아이에게 용기를 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한참 연도를 건너가 1990년에 이르면 또 같은 방식의 캠페인으로 '스파이더맨과 뉴 뮤턴트'가 나온다. 앞의 스파이더맨 이야기는 월트 사이먼슨 작가가 뒤의 뉴 뮤턴트 이야기는 루이스 사이먼슨 작가가 썼다. 이번에는 아동에 가해지는 폭력을 해결하려면 어른들의 노력이 크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첫 이야기의 주제는 교사와 부모가 아동에게 저지르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 스파이더맨이 길거리에서 친구를 때리고 있는 소년을 만난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과 아버지 모두 걸핏하면 이 아이를 체벌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친구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 밖에 없다는 것.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서 교사의 이유없는 체벌에 관해 말하는 아버지는 믿지 않는다. '우리도 다 그렇게 맞아가며 컸어요.' 스파이더맨의 설득 끝에 부모는 학교장과 면담을 잡고 학교에 찾아가기로 한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애들이 엄마 말도 안듣고 서로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셋 중에 제일 큰 아이가 사고친 동생을 때리자, 엄마의 화가 폭발한다. '내가 동생 때리라 했어 안 했어?' '엄마도 나 맨날 때리잖아!' 마침 현장에 있던 뉴 뮤턴트 멤버 스키즈가 걸핏하면 아빠한테 얻어맞았던 어릴 때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지켜준다. 엄마도 '나도 어릴 때 맞고 자라서 이렇게 밖에 할 줄 몰라.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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