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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 노동절, 미국 만화 작가들의 권리 찾기 운동의 역사

오늘의 코믹스

by 오늘의 코믹스 2024. 5. 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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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코믹북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와 실패

 
미국 만화 역사에서 노조 설립 운동의 시작은 1951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버나드 크릭스타인(Bernard Krigstein)과 아서 페디(Arthur Peddy)등 주축이 되어 만든 '코믹북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The Society of Comic Book Illustrators'였다. 여기 멤버로 활동했던 분들 중 만화팬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메탈맨과 퍼니셔의 창작자이신 로스 앤드루(Ross Andru) 작가도 있었다. 
 
당시에 작가들이 연대하여 요구한 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만화 원화는 도서를 만든 후에 원작자에게 반환할 것, 둘째, 페이지당 페이지당 최저요율을 지정하여 어떤 작가든 최소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셋째, 만화책 회사들이 창작자들의 건강보험을 보장하여 줄 것. 그러나 업계에서 오래 일하며 자리를 잡은 베테랑 작가들과 젊은 작가들 사이에 입장이 벌써 갈라졌다. 같은 작가들끼리 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전투적으로 가서 업계와 척을 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요구가 계속되자 제일 먼저 행동을 취한 곳은 바로 DC, 그리고 그곳을 대표하는 인물. 작가이자 편집자였던 '로버트 캐니거(Robert Kanigher)였다. 가장 원초적으로 이런 집단행동을 지속할 경우 협회에 소속된 작가들에겐 일거리를 주지 않겠다는 협박부터 시작해서, 오히려 노조를 탈퇴하고 자신에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작가들에겐 페이지 요율을 올려주는 당근도 제시했다. 당연히 내부분열이 생겨났고, 협회는 창립된 지 몇 년 되지 못해 해체되고 만다. 설립 주동자였던 '버나드 크릭스타인'은 여러 만화출판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감을 받을 수 없었는데, 딱 한 곳 공포만화의 산실이었던 EC가 예외였다. 하지만 50년대 만화계에 내려진 검열의 철퇴 속에 EC가 몰락하면서 크릭스타인은 만화계를 떠나야 했다.
 

로버트 캐니거와 버나드 크릭스타인

 

1968~69년 DC코믹스 글작가들의 조합 결성 시도와 실패

 
68~69년 당시에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DC코믹스 글작가들 사이에서 조합 결성의 움직임이 크게 일어났었다. 이때 참가한 작가는 존 브룸(John Broome), 가드너 폭스(Gardner Fox), 빌 핑거(Bill Finger), 아널드 드레이크(Arnold Drake), 오토 빈더(Auto Binder), 밥 해니(Bob Haney), 마이크 W. 바(Mike W. Barr), 웨인 보링(Wayne Boring) 등등 그 시기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설의 작가들이었다. 이들이  모여서 역시 50년대 조합과 비슷한 요구를 한다. 
 
우선 이 당시 작가들에게 악명 높았던 DC 측 편집자의 이름이 바로 '모트 와이징거(Mort Weisinger)'. 심지어 DC라는 회사를 일으켜세웠다고도 할 수 있는 빌 핑거(Bill Finger) 같은 작가에도 수틀리면 막말을 퍼붓곤 했던 양반이니. 이 시기에 작가들은 작가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 이전에 인간적인 모멸감이나 작가로서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고 한다. 회사가 누구 때문에 지금에 와 있는 것인데, 어째서 우리가 아직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까? 그래서 존중해 달라. 그리고 최소한 우리가 기여한 만큼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달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다.
 
요구사항을 대략 정리하면 역시 크게 셋.  첫째. 페이지당 창작 요율을 인상해 달라. 둘째, 작가들의 건강보험을 회사에서 보장해 달라. 셋째, 퇴직금을 보장해 달라. 그래서 대표였던 밥 해니와 아널드 드레이크 작가가 사장과 따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역시 50년대 썼던 전략이 이번에도 사용된다. '페이지 요율 올려드립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다 해드리진 못하고, 한 분씩 차근차근 올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오늘 대표로 오신 작가님부터 1순위로 해드리죠.' 이 제안을 받고 나오면 조합원들 앞에서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애초에 문제 해결을 하자고 한 제안이 아니라 노조를 분열시키기 이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작가들은 결국 '파업'을 해야겠다는 결정에 도달한다. 그 사이에 역시 다른 작가들도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비슷한 제안이 간다. DC 측은 노조가 스스로 진이 빠져 나가떨어질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끄는 작전을 사용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이들 작가들을 다른 작가들로 다 대체해 버린다. 
 
당시 DC 편집자들의 사고방식에는 글 쓰는 작가들은 창작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편집자가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플롯을 짜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글작가는 거기에 맞춰서 적당히 대본을 써오기만 하면 되었으며, 그 대본마저도 편집자의 손을 거치며 많은 수정이 필요했기에 사실상 자신들이 그 작품의 진정한 작가이자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껏 글작가들을 무시하고 모욕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권리를 요구했을 때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고.
 
여하튼 이렇게 한 시대를 일군 작가들이 퇴장해 버리고, 새로운 작가들이 들어오는 세대교체가 일어나는데, 이때 새롭게 DC에 들어온 편집자가 카마인 인판티노(Carmine Infantino)였다. 당시 작가 노조의 작가들은 카마인 인판티노에게도 당신도 우리와 동변상련처지지 않느냐. 우리와 협조해서 이 시스템을 바꿔보자고 설득을 했지만, 카마인 인판티노가 저는 회사 측 사람입니다 하면서 거절했다고. 만약에 이때 카마인도 합세해서 파업이 이뤄지고, DC 측의 만화사업에 지장이 생겼더라면 뭔가 바뀌는 일이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카마인 인판티노는 기존 작가들 대신 새 작가들을 데려오는데, 그들이 잭 커비, 데니스 오닐, 닐 애덤스 같은 작가들이었다.
 

조 슈스터, 닐 애덤스, 제리 시걸, 제리 로빈슨

 
 
 
 
 

만화예술 아카데미(Academy of Comic Book Arts) 설립

 
1970년에 스탠 리(Stan Lee)가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을 만들자 하여, 이 단체를 설립하고는 우수한 작품을 만든 창작자, 만화 역사에서 중요한 창작자들을 골라서 상을 수여하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기리고 하는 일들을 시작한다. 그래서 맨 처음 슈퍼맨의 창작자인 '제리 시걸(Jerry Siegel)'과 '조 슈스터(Joe Shuster)'에게 상이 수여된다. 처음에는 만화계의 위상을 높여보자는 뜻으로 한 일이었는데. 이것이 발단이 되어서 뜻하지 않는 작가들의 결집을 가져온다. 작가들이 가장 훌륭한 작품을 쓰고 그린 작가를 뽑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모이고 연회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업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오고 가고 서로 교류하는 장이 열린 것이다.
 
이제 70년대 80년대 이름을 날리게 되는 작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닐 애덤스(Neal Adams)', '하워드 체이킨(Howard Chaykin)', '길 케인(Gil Kane)', '존 로미타(John Romita)', '짐 스탈린(Jim Starlin)', '프랭크 브루너(Frank Brunner)', '존 번(John Byrne)', '월트 사이먼슨(Walt Simonson)' 등등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서 교류했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모이면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나중에 가면 그저 어떤 작품이 훌륭한지 이전에, 그들의 생계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 중에는 편집자와 갈등을 겪고 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이 받고 있는 대우에 대해서 어떤 부분이 부당한지, 어떤 작가가 부당한 처지에 놓였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어느새 이들 모임에 제일 큰 주제가 되어버린다.
 
이때 작가 권익 쪽에 비중을 두어서 이 단체 대표가 된 인물이 바로 '닐 애덤스(Neal Adams)'였는데,  이제 애초에 설립 목적인 '상을 수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자는 사람들과 작가들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같이 높여보자는 사람들로 파가 갈라졌고, 자연스럽게 설립자 스탠 리도 애초에 노조를 결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발길을 끊으면서 1977년에 이 단체는 해체되고 만다.
 

닐 애덤스, 슈퍼맨 원작자를 위해 싸우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978년 영화 '슈퍼맨(Superman)'이 개봉해서 미국과 전 세계에 슈퍼맨 열풍을 일으켜버렸는데, 정작 슈퍼맨의 원작자인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이 성대한 히어로 잔치. 영화의 대성공과 막대한 수익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미 두 사람은 이전에도 DC코믹스에게 슈퍼맨 저작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소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슈퍼보이 관련해서 승소하여 로열티조의 보상금을 받긴 했지만, 대신 각서를 써야 했었다. 이후로 슈퍼맨 및 슈퍼맨 관련 캐릭터들에 관해서 다시는 그 어떤 저작권 주장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소송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 
 
그 결과 이후 슈퍼맨 만화에서 원작자로서 두 사람의 이름은 완전히 빠져버렸고, 두 사람은 이 소송을 계기로 해서 DC 쪽과는 더는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제리 시걸은 다른 출판사 쪽에서 글 쓰는 일을 계속하긴 했지만, 조 슈스터는 만화 관련한 일을 그만두었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생계적으로 위기에 도달한다. 그 유명한 슈퍼맨을 만든 원작자가 생계유지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자 결국 제리 시걸의 아내가 DC를 찾아가서는 대표를 대면했다. 슈퍼맨 원작자의 가정이 어떻게 몰락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지 신문을 통해 온 세상에 소문나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DC에서는 그건 안 될 일이라면서 제리 시걸에게 일감을 주기 시작한다. 물론 원작자로서의 특별대우는 전혀 없었다. 제리 시걸은 1964년에 원작자로서의 대우를 받고 싶다고 얼핏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자 바로 DC에서 쫓겨난다. 
 
그런 처지에 있었는데 갑자기 위의 '만화예술아카데미'가 세워져서는 슈퍼맨 원작자들의 이름을 드높이고 그들에게 상을 수여했었고, 이제 70년대 중반, 슈퍼맨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제리 시걸은 다시 DC에 소송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언론에다 자신이 슈퍼맨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계약과 관련해서 그 어떤 수익도 얻을 수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 글을 읽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닐 애덤스(Neal Adams), 제리 로빈슨(Jerry Robinson) 등이 대표적이었다. 닐 애덤스는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고, 제리 로빈슨은 자신 또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권리가 있다면서 DC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원했는다.
 
이들이 팔을 걷고 지원하여 나서준 결과 결국 DC는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를 슈퍼맨의 원작자로 인정하여 다시 슈퍼맨 만화에 이들의 이름을 넣기 시작한다. 또한 이들에게 매년 일정한 연금과 건강보험 지원도 하게 된다.
 
마침 이 시기가 저작권법 개정 시기기도 했다. 1976년에 미국 저작권법. 1978년 1월 1일 이전에 출판된 저작물은 보호기간이 75년, 1978년 1월 1일 이후 출판된 모든 저작물은 저작자의 생존기간과 저작자 사후 50년간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고 하는 내용의 법이 이때 제정되고 1978년부터 시행이 되었었다. 이 법에 따르면 이제부터 마블이건  DC건 만화 출판사들은 작가들로부터 정확하게 어떤 권리를 얼마간 양도받았다고 하는 문서화된 내용이 없는 이상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이 부분과 관련된 '계약서' 서식을 만들게 된다. 작가들에게 전달된 계약서 내용에는 작가는 원작자가 아니라 마블과 고용인 피고용인 관계로 일한 것이었기에 모든 권리는 마블에 있으며, 또한  해당 만화작품 이외에 관련된 상품과 굿즈도 마블이 작가 동의 없이 마음대로 만들어 팔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때 닐 애덤스가 나서서 '절대로 서명하지 마라.'며 작가들을 결집하였고, 작가들이 받는 페이지당 요율을 높여보려고 애를 쓴다. 여기서도 작가들 사이에 편이 갈라지게 된다. 기존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작가들, 존 뷰세마(John Busema), 살 뷰세마(Sal Busema), 진 콜란(Gene Colan), 커트 스완(Curt Swan), 로이 토마스(Roy Thomas), 데니스 오닐(Denny O'neil) 같은 분들은 주저했다. 그런 요구가 실제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까딱 잘못하다가 이전의 선배 작가들 사례처럼 아예 하루아침에 업계 어느 곳에서도 있을 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닐 애덤스는 스타작가였기에 만화 외적으로도 광고 그림이나 다양한 수익원이 있었지만, 안 그런 작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맨 창작자, 저작권법 개정, 마블의 저작권 영구 양도 계약서 등이 계기가 되어서 이 작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결국 DC코믹스, 마블코믹스 모두 1982년부터 작가들에게 새로운 보장을 시작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페이지 요율을 인상함과 동시에 일정부수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책의 경우, 그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재인쇄하게 되면 그에 대한 추가 지불도 있게 됐다. 
 

이미지 코믹스 설립 멤버들

 

이미지 코믹스의 탄생

 
이제 또 시간은 흘러가 이미지 코믹스 탄생으로 넘어간다. 당시 이미지 코믹스 원년멤버는 90년대 최고의 인기작가들이었다. 롭 라이펠드(Rob Liefeld), 짐 리(Jim Lee), 토드 맥팔레인(Todd Mcfalane), 마크 실베스트리(Marc Silvestri), 윌체 포타시오(Whilce Portacio), 짐 발렌티노(Jim Valentino), 에릭 라센(Eric Larsen). 등이었다. 당시 마블에서 제일 잘 나가던 작가 3인방을 꼽아보라 하면, '엑스맨'의 짐 리, '스파이더맨'의 맥팔레인, '엑스포스'의 라이펠드였는데, 이슈가 나왔다면 그냥 밀리언셀러였다. 수십만 부는 기본이고, 몇백만 부 그냥 찍을 정도. 그래서 인기 자체가 할리우드 스타들 못지않게 굉장했다. 그래서 이들 이름값이 사실 마블 보다 더 높이 있는, 마블이라는 브랜드 때문에 이 작가들의 만화를 읽는 게 아니라, 이 작가들이 마블을 그리기 때문에 독자들이 마블을 사보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만화를 팔면 만화책 외에 굿즈도 만들게 되는데, 가령 티셔츠를 만든다고 하면, 말이 티셔츠지, 그것도 팔면 어마어마한 수가 팔리는 거다. 문제는 분명 짐 리나 롭 라이펠드의 그림이 박힌 티셔츠인데도 불구하고 그거를 팔아서 얻어지는 수익은 단 1원도 이들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최소한 그 그림이 누구 그림이다라는 표시는 하는가, 그것도 없었다. 티셔츠만 그런 게 아니라 포스터도 그런 식으로 마구 팔려나갔고, 이게 미국에서만 팔리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잘 팔렸는데, 심지어 해외에서 팔리는 코믹북의 수익은 아예 100프로 회사가 독식을 했다. 그러니 작가들 마음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쌓이고 쌓이면서 언제 터져도 터질 상황이었다.
 
제일 먼저 계기는 토드 맥팔레인에게 찾아왔는데, 그가 그린 만화 중에 엑스포스 팀이랑 빌런 저거너트가 한판 붙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 묘사가 저거너트 오른쪽 눈에 칼날이 박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편집자가 작가한테 수정을 제의한다. 워낙에 다양한 연령층이 보는 만화니 수위를 좀 낮춥시다. 다른 때 같으면 전혀 근거 없는 태클도 아니고 수긍이 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이만큼 쌓여있던 상황에서 태클이 들어오니 그냥 관두자 싶었다고 한다. 마침 집에 아기도 새로 태어난 시점이었고, 스타작가로서 부도 어느 정도 챙긴 상황이라 돈이 아쉬운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김에 쉬자 하면서 마블을 떠나버린다.
 
롭 라이펠드도 그 시기에 마침 '말리부 코믹스'라는 만화회사 사장에게 새로운 작품을 하나 제안을 받는다. 말리부는 그 당시에 인기 영화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의 미국판인 로보텍 만화나 흑성탈출 만화 등을 내던 회사였는데, 이제 외부 콘텐츠 말고 자체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롭 라이펠드한테 작품 하나 같이 해봅시다 제의하는데, 라이펠드도 마침 마블에 지친 차라 혹하게 된다. 그래서 '엑스큐셔너즈'라는 작품을 넘기게 되는데, 말리부에서 그걸 바로 만화잡지에다가 광고로 내버린다. "엑스포스의 작가 롭 라이펠드의 신작! 말리부에서 론칭합니다!" 그런데, 이게 벌써 제목에서부터 엑스포스라고 마블 만화 제목이 들어가고, 심지어 등장인물들도 엑스맨 시리즈의 패럴, 케이블, 도미노 같은 캐릭터들을 겉모습만 살짝 바꾼 티가 너무 나는 캐릭터들이었다.
 
광고를 접한 마블 편집장 밥 해라스(Bob Harras). 뿔이 머리끝까지 나서는 라이펠드에게 법정 대응을 하겠다고 난리를 친다. 작가가 잘못한 건 맞는데, 마블이 처음부터 잘한 것도 없었으니, 관계는 더 서먹해지고, 같이 일하기 힘들어진다. 라이펠드는 DC로 넘어가 볼까 하면서 DC에 슬쩍 물어본다. DC에서 돌아온 답변은, '우리도 마블 이상의 대우는 힘듭니다!' 결국 라이펠드에 남은 선택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리부로 가는 것뿐. 에라 이렇게 된 거 나 혼자 갔다가 쪽박 차지 말고, 다른 작가들 왕창 데려가서 같이 크게 사고 쳐 보자. 그래서 짐리에게 컨택한다.
 
라이펠드에게 연락받은 짐 리는 솔직히 별로 아쉬울 게 없었다. 엑스맨 만화가 워낙에 대박을 쳐서 기네스북에도 오르고 했던 터라. 솔직히 포스터? 티셔츠? 그런 거 수익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신경도 안 썼고, 그냥 마블에 붙어 있는 게 제일 좋았다. 떠날 필요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서운함은 의외의 부분에서 생기는데, 91년 겨울에 만화 관련 경매 행사가 열려서 마블이 작가들을 초청하면서 작가들에게 1인당 비행기 티켓 1장씩 지원해 주겠다고 했단다. 그러면서는 혹시 배우자 데려오실 분은 배우자 티켓은 자비로 해결하세요 했다는 거다. 여기서 짐 리의 마음이 팍 상한다. '내가 비행기 표값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게 얼마인데, 배우자 표 한 장 더 끊어주는 것도 못해주나? 2200만 달러를 벌어준 나한테 200달러를 쓰는 걸 아까워한다고?' 
 
이렇게 해서, 가정이나 챙기자 하고 짐 싼 맥팔레인과, 사고 치고 애매한 상황에 뛰쳐나온 라이펠드와, 서운함에 돌아선 짐 리의 도원결의가 성사된다. 여기에 울버린 작가 마크 실베스트리가 끼어서 넷이서 마블 사장실로 돌진. "사장님! 우리한테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동안 서운했던 거 막 토로하는데. 갑자기 맥팔레인이 급발진을 시작한다. "수익의 70프로! 아니 90프로는 작가가 갖는 게 정상 아닙니까!" "배우자 비행기표도 끊어주고, 호텔방도 잡아주셔야 맞죠!" 덩달아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막 튀어나는데, 심지어는 "우리 뒤를 이어받을 작가에 대한 지명권도 우리 작가들에게 주십시오!" 
 
옆에서 가만히 듣던 밥 해라스는 편집권까지 달라는 소리에 이제 또 버럭. 그래서 사장이 '우리 마블에 '에픽' 임프린트가 있으니, 거기에서 여러분 요구대로 여러분 작품에 대한 간섭 없이 마음껏 그리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마블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도 그러면 반반 나눠가집시다.' 제안을 한다. 이게 후한 제안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게, 당시에 롭 라이펠드 같은 작가는 1년 새에 30명 가까운 신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케이블이고 데드풀이고 다 자기가 만들었는데, 무슨 호의를 베풀듯 반반하자 하는 태도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됐어! 때려치우고 말리부에서 새 인생 시작하렵니다!" 젊은 작가들이 훅 돌아서 나와버린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큰소리치고 나와놓고선 이 넷이서 다음날 슬쩍 DC에 또 들린다. 마블의 스타군단이 갑자기 DC에 나타나니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설마 단체 이적? 이게 무슨 횡재?' 기대감에 부풀어 쳐다보는데, 이 작가들이 하는 대답이 거기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 마블하고 인연 끊고 나온 길입니다! 나오다가 DC가 생각나서 들렸는데, 이쪽 하고도 같이 일할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들 알고 계세요!" 그리곤 이 작가들은 바로 말리부에서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시작. 이게 1992년 이미지 코믹스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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