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은 로마시대의 폭군 '네로 황제'가 사망한 날이다. 영화 쿼바디스(1951)에 보면 네로황제를 신으로 모시던 축제가 나오는데, 로마 사람들이 얼마나 종교에 심취해 있었는지를 잘 묘사했다. 베스타 신녀들(Vestal Virgins)이 성화 앞에서 신을 부른다. (베스타는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의 로마식 이름.) 신녀들은 광장 좌우로 늘어선 거대한 신상들을 향해 신의 가호를 부르짖는다. 중앙에는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있고, 좌편에는 미의 여신 '비너스'가 우편에는 전쟁의 신 '마르스'가 섰다. 베스타 신녀는 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외친 후에 마지막으로 제우스의 아들이라며 '황제 네로'를 부른다. 신의 지위로 국민들 앞에 선 황제는 한 손을 들어 인사한다.
영화 로마제국의 멸망(1964)에도 신들로 도배된 화려한 로마 황궁의 모습이 나온다.
스타워즈의 오비완 캐노비로 유명하신 '알렉 기네스'가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할을 했는데, 황제 아래 아들 하나 딸 하나가 등장한다. 아들은 훗날 폭군이 되는 '코모두스', 딸은 '루실라'다. 소피아 로렌이 연기한 루실라는 어머니와 관련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속세를 떠나 베스타 신녀가 되었다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쿼바디스'를 결합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차이점은 신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보다는 황제의 상이 광장 중앙에 크게 서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크게 두 개가 눈에 띈다. 하나는 아우구스트, 또 하나는 말을 탄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어쨌건. 오늘의 이야기는 네로 황제가 등장하는 '브리타니아'라는 만화다. 네로 황제가 서기 68년 6월 9일에 사망했는데, 이 만화는 네로가 로마 대화재를 저지른 64년의 이듬해인 서기 65년이다. 작가 피터 밀리건은 황제, 원로원만큼 강력한 권력으로 로마를 지배했던 베스타 신녀들과, 그 신녀들이 만들어낸 초자연 탐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녀들의 특별한 제의를 통하여 특별한 감각을 갖게 된 인물. 로마제국 최초의 '디텍티브' 아니 '디텍셔너'. 로마식으로 하면 '탐지관' 정도 되지 싶다.
이야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세계 제국 로마가 세계로 영토를 확대해가면서 이민족의 여러 종교들을 같이 받아들이는데, 그 과정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스러운 사건들, 납치사건, 살인사건, 학살사건 등 잔혹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문명국이라고 자부하는 로마는 과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가. 그것도 아니다. 네로 황제도 베스타 신녀들도 마르스의 저주, 비너스의 저주를 믿으며, 사람 죽이기를 밥먹듯이 한다. 군인들은 전장에서 야만인의 피를 뒤집어쓰며 전투하고, 귀족들은 황금의 욕조에서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피로 목욕하며 핏빛 포도주를 들이켠다. 이민족 신의 이름으로 흘리는 피는 야만의 피요, 로마의 신의 이름으로 흘리는 피는 성스런 피로 여겨진다.
이렇게 이민족의 피로 세워진 제국은 미쳐가는 황제의 기행과 그 배후에서 나라의 운명 따윈 개나 주라 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정치인 종교인들의 욕망 속에 흔들린다. 부와 권력을 세습하고 가로채기 위해서 벌어지는 암투와 범죄. 주인공은 유일하게 신을 믿지 않는 자다. 어떤 공포에도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21세기 현대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마치 쿠오바디스의 저자 시엔키에비치가 러시아에 시달림받은 폴란드의 상황을 빗대어 쿠오바디스를 썼듯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역설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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