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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 윌 모리스의 '가스펠 Gospel' 헨리8세 종교개혁과 수도원 해산의 부작용

오늘의 코믹스

by 오늘의 코믹스 2024. 6.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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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돼지 한 마리가 시장을 깨부수며 질주한다. 그 앞을 검을 들고 막아서는 마을 기사. 마을을 보호한다는 거창한 사명을 갖곤 있지만 실상은 무지막지한 괴물 돼지를 잡는 일이 아니라 작은 돼지 키워서 밥벌이하기 바쁘다. 호칭이야 교회 안에서 근사하게 붙여놨어도 사실은 다 밥벌이. 나라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 위에서는 '개혁'을 외치며 혁파하고 청산한다지만 거기 밥줄이 걸렸으면 포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어쩌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결국은 적응해야 또 먹고살 수 있다. 만화 '가스펠'은 높은 분들이 멧돼지처럼 밀어붙이는 사회적 변화 앞에 휘둘리는 작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사회를 지탱하려면 국가가 우두머리가 되기 전에 지역 공동체와의 조화와 대상자들의 삶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는 이야기까지 간다. 

 

관련 내용은 이러하다. 6월 11일은 영국의 헨리 8세가 캐서린과 결혼한 날. 헨리 8세는 이혼과 결혼 문제를 놓고 로마 교황청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은 가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를 창설한다. 정말 큰 변화였다. 교회의 우두머리가 바뀌고 기존에 거미줄처럼 뿌리내리고 있던 교회의 그물망을 다 해체하고 새로 조직을 자는 것이었으니.

 

그런데 종교라는 것은 신을 어떤 방식으로 믿고 어떤 계율을 따르느냐 이전에 한 지역을 하나의 공동체로서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계층과 직업과 출신. 여러 차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뭉치기 어려운 사람들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묶어주고 어울리게 하는 역할. 서로 안부를 묻고 돌보게 하는 역할. 말 그대로 먹을 것을 나누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하는 기본적인 역할들이 있다.

 

교회 상층부 높은 분들이야 자기들끼리 자리를 사고팔고 세습을 하고 법을 바꾸고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재판하고 하더라도, 저 시골의 작은 공동체들은 그런 거 다 떠나서 그냥 같이 정해진 시간에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몸 불편한 사람 부축해 주고, 나이 든 사람 반찬 챙겨주고,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같이 축하해 주고, 사람이 죽으면 힘을 모아 장례를 치러주고, 그런 게 제일 큰 일이다. 어떤 곳은 교회가 생기면서 마을이 건설된 곳도 있고, 교회의 역사가 곧 마을의 역사인 곳도 있다. 그런 곳에선 교회의 정체정에 곧 나의 정체성이 된다. 이건 오늘에나 그 시절 헨리 8세 시대나 별 차이는 없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직후에 이뤄졌던 대표적인 일이 바로 '수도원 해산'이었다. 수도원과 성직자들이 가진 과도한 권위를 무너뜨리고 이제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통해서 모든 국민이 직접 성경을 통하여 신의 말씀을 접하도록 하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지역마다 존재하고 있는 수도원을 해산시키면 국교회로의 전환이 빨라지는 것도 빨라지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수도원이 가진 여러 재산이 왕실 차지가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헨리 8세를 부추겨 종교개혁을 총괄했던 '토마스 크롬웰'은 수도원마다 철저히 조사하여 해산의 빌미를 잡아내기 시작했다. 성직자들이 교회 재산을 사적으로 빼돌려 치부했다라든지, 성직자들이 은밀하게 성적 타락을 저질렀다든지 부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의외로 문제가 있는 자들이 많이 걸려 나왔다. 문제가 없는데도 문젯거리가 되거나 과장되어 누명을 쓰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증거가 잡힌 곳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교회 건물을 불태우고 허무는 일들이 이뤄진다. 그런데 교회는 가톨릭 성직자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수도사와 수녀들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일반 직원들도 있었고, 또 수도원의 후원을 받아 교회에서 쓸 성물이나 예술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예술가들도 많았다. 지역의 수공업자들과 상인들도 교회와 거래하는 물품들이 많았고, 또 교회에서 거둬들여 먹여주고 교육시켜 주는 고아들도 있었다. 수도원 해산은 교회 건물을 허물고 성직자들을 몰아내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 사회 경제를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교회의 재산은 어느 정도 돈 있는 사회 중상류층들에게 매각되어 현금화되는데, 이때 헐값에 교회 재산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짭짤하게 이득을 보며 부를 부풀렸다. 하지만 교회에 의지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사람들은 수입원도 잃고 미미하나마 교회를 통해 돌아가던 복지도 잃게 된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가스펠'은 그 시기 혼란 속에서 바뀐 새 세상에 적응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리뷰들을 보면 그림체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시킨다고 하는 평이 많은데 은근히 비슷하다. 특히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꿈, 그 꿈을 향한 도약, 도전이 주는 역동성이 그런 느낌을 더 크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이 만화에서 매력적인 건, 실제 영국의 브렌터라는 곳의 지역 전설, 지역 유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합한 점. 또 하나는 현대와 과거를 오고 가는 구성인데, 현대의 이야기에는 이제 늙고 인지나 기억에 문제가 생기면서, 시설로 들어가기를 권유받는 한 노인이 등장한다. '이웃들이 어르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요양원으로 들어가자는 복지사의 권유에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다. 나의 인생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곁에 둔 채로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노인. 복지사는 긴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헨리 8세 시대 수도원 해산이 가져왔던 부작용처럼 노인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돌봄에 있어서 지역 안에서 사회적 돌봄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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