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그래픽 노블 데어데블 시리즈 중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이 하나 있다. 데어데블이 악당들과 용감히 싸우는 대목보다 더 눈길이 갔던 부분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변호사 맷 머독이 보호관찰관 일을 맡게 된다. 맷 머독은 데어데블 만화에서 변호사이기도 했지만 뉴욕 시장도 역임했었다. 뉴욕의 일반사람들은 맷 머독이 데어데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무 편견 없이 그에게 공직을 맡기고 다양한 업무를 맡긴다. 명예 시장, 명예 보호관찰관이 아니라 그냥 그 업무를 평범하게 다 수행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부분은 이 만화에서는 그가 관찰소에 처음 근무를 시작하는 날부터 그곳에 바로 점자 프린터가 주문되어 설치되고, 매일 그를 위해 점자로 타이핑을 쳐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이다. 만화는 그런 부분을 꽤 자세하게 표현했다. 번거롭다고 투덜투덜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기를 설치하고 인력을 배치하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그려져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이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그림. 너무나 당연한 만화속의 그림이 되었다.
=오늘날 영화 속에 더욱 자주 등장하게 된 장애인 히어로들. 특히 농인 히어로 이야기=
그런데 초창기 히어로 만화들로 거슬러가보면 참 많이 달랐다. 실제 19세기말부터 20세기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엔 정말 어처구니없는 법이 하나 있었다. 만화 속 가상의 법이 아닌 실제 존재했던 법. 일명 '어글리 법(Ugly Law)' 법이다. 이름부터가 말이 안 되게 생긴 이 법의 요지는 소위 '못생긴 사람은 밖에 나다니지 마'라는 것이었다. 특히 장애로 인해서 신체의 모양, 얼굴 모양이 다르게 생긴 사람, 걸음걸이나 몸짓 손짓 발짓, 얼굴표정이 다른 사람, '길에서 보이지 마라' 는 게 이 법의 요지. 장애인들은 공공장소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말 그대로 '어글리'. 추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했다. 여기에 예외인 존재가 있다면 장애가 있되 아주 예쁜 장애인. 보기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면 가능했다.
가령 판타스틱 포를 예로 들면 '씽'은 겉모습이 몹시 흉한 바위괴물이기 때문에 몸을 코트로 가리고 모자를 쓰고 자신을 숨기고 다녀야했다. 하지만 시각 장애가 있으나 아주 예쁘게 생긴 '알리샤 마스터스' 같은 캐릭터에겐 악에 빠질 수 있는 씽을 선의 길로 인도하는 '성녀'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아름다운 것은 동정받을 수 있으나, 추한 것은 없어져야만 했다.
아름다운 장애인의 성녀화
만화며 소설이며 드라마 영화. 이야기들에서는'장애', '다른 겉모습'이라는 게 흔히 악을 표현하는 유용한 툴로 쓰인다. 배트맨의 빌런들을 보라. 거의 대다수가 어글리한 얼굴을 가졌다. 투페이스, 조커, 펭귄... 다수의 오리진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았던 아이들이다. 적당한 보호의 울타리 없이 범죄에 노출되고 사고에 휘말려서 몸이 일그러지고, 그 결과 사회 밖으로 밀려나서 생존한 자들이 태반이다. 영화 '조커'를 보라. 살기 위해서, 꿈을 갖기 위해서 발버둥 친 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으로 내몰리는지. 팀 버튼의 영화에 나오는 펭귄을 보라. 그는 태어나자마자 남들과 다르게 생긴 외모로 인해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하수구에서 생존하였다. 마블 판타스틱 포의 '몰맨'은 남들과 다르게 생긴 얼굴 때문에 조롱받고 사회로부터 밀려나다가 결국 지하세계로 내려가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람이 '악인'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할 때 가장 편한 툴이 이 세 가지다. '부모가 없이 자란 사람', '가난하게 산 사람', '다른 겉모습으로 인해 아웃사이더가 된 사람'. 만화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악인의 큰 비율을 이룬다. 여기에 조금의 양념을 더 쳐주는 정도다. 픽션이니 어떠냐 말할 수 있지만. 그 픽션이 거의 계속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거는 사회 전체에 흐르고 있는 어떤 사고방식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어글리 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의식 같은 것.
물론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거기엔 이미 장애인을 어글리하다며 유리시킨 사회 전체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픽션들은 오히려 이들 장애가 있는 악인들의 목숨만큼 현실과 정반대로 끈질기게 길도록 표현한다. 절대 죽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할 때는 그들이 악하다고 생각해서 격리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떻게 살다 죽는지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다.
사실 현실은 만화처럼 이들의 삶이 끈질기지 못하다. 사회가 이들에게서 이동의 자유를 빼앗고 시설에 감금하고, 내다버리면, 이들은 여느 당연히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펭귄처럼 하수구에서 살아남고, 몰맨처럼 지구 중심에서 살아남고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비율을 전체 인구의 5% 정도다. 중증 장애인부터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경미한 수준의 장애를 가진 사람까지 다 포함해서 그렇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 장애인 사망자의 수는 비장애인 포함 전체 사망자 수의 21%에 달했다.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망자 수에선 21%를 차지한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는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편인데, 보통 미국과 유럽에서도 36세 정도로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사망 연령은 23세다.
슈퍼맨과 비자로. 장애인 격리와 학살을 합리화한 우생학 이야기
마블 만화에 그려진 발달장애인과 탈시설 문제
시설로 끌려가야했던 자폐소년
영화 피넛버터팔콘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잭 : '나는 프로레슬러가 될 거야. 나쁜 놈 역할로.'
타일러 : '왜 하필 나쁜놈이야?'
잭 : '가족에게 버림받은 놈이니까 나쁜 놈 해야지.'
타일러 : '버림받으면 다 나쁜 놈이냐? 착한 놈도 버림받아. 검은 가면 검은 망토 날리고 이상하게 웃으면 다 나쁜 놈이야? 아무 관련 없어. 착하고 나쁘고는 여기... 마음에 달린 문제라고. 넌 말이다. 착한 놈의 마음을 가졌어. 누가 뭐래도 너는 착한 놈이야. 히어로라고.'
잭 : '내가 무슨 히어로야... 다운 증후군이.'
타일러 : '그게 네 마음이랑 무슨 상관인데? 누가 그렇게 말해?'
잭 : '코치님이랑 선생님들이.'
타일러 : '코치가? 뭐랬는데?'
잭 : '나보고 저능아래.'
타일러 : 'X같은 코치네. 팀이 이긴 적은 있냐?'
잭 : '없지?'
타일러 : '사람이 다 잘할 수 있냐? 못하는 것도 있지. 농구선수는 아무나 하냐? 덩크를 해야지. 수영선수는 아무나 해? 너 같은 돌근육은 그냥 바로 가라앉아. 그런데 그 돌근육으로 물에서 줄 당길 땐 엄청나더구먼. 팔 빠지는 줄 알았다. 웬만한 장정보다 셌어. 너 강해 인마. 코치 그 새끼 X도 모르네.'
- 이 문제에 관해서 아주 잘 쓴 글 하나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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