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은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일. 그러나 우리 코믹북 세계에는 그의 이름을 이어받아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쓰는 또 다른 슈퍼히어로가 있었으니. 돌연변이 닌자 거북이! 그 첫 이야기는 레오나르도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내 이름은 레오나르도!
우리들은 길을 잘못 들어 쓰레기 투성이 막다른 골목에 갇히고 말았다.
출구를 막고 선 자들은 이스트 사이드에서 제일 악독한 갱단, 퍼플 드래곤파 놈들.
목숨을 걸지 않는 한 길은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차분히 검을 고쳐잡았다.
왼편의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도 각자 봉과 쌍절곤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오른편에선 라파엘로가 수비자세에 들어갔다.
라파엘의 몸이 떨리고 있다.
언제든 상대를 벨 수 있도록 온몸의 기를 집중하면서"
레오나르도는 케빈 이스트먼(Kevin Eastman)과 피터 레어드(Peter Laird)의 만화 돌연변이 닌자거북이 4인방 중의 한 명이다. 닌자 거북이 4인방은 모두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 이름을 사용한다.
피터 레어드가 여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던 집에 케빈 이스트먼이 방을 하나 얻어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갇히 살면서 일명 '미라지 스튜디오'라는 만화 창작실을 차린다. 말이 '스튜디오'지 거실 공간을 거실겸 작업실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신기루 같은 작업실이라는 뜻으로 '미라지'라고 지었다. 어느날 케빈 이스트먼이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렸다. 거북이 한 마리가 두 발로 섰는데, 머리에는 복면을 썼고, 앞다리에는 쌍절곤을 감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 하나에서 모든 것이 출발했다. 그 첫 그림에 서로 하나씩 보태면서 '닌자 거북이!'가 완성된다.
1970년대 미국은 이소룡이 일으킨 짧은 쿵푸 열풍 이후, 포스트 이소룡들이 그 뒤를 이어받고, 이제 닌자의 시대로 유행이 건너갔었다. 닌자의 열풍은 프랭크 밀러 작가의 데어데블로도 이어졌다. 두 작가는 데어데블의 광팬이라 데어데블에서 본 닌자의 요소들을 자신들의 만화에 많이 차용했다. 엘렉스타의 쌍차(사이)에서 라파엘을 차용했고, 데어데블의 스틱의 봉, 그리고 스틱처럼 그들 닌자거북이의 스승의 이름을 스플린터라고 지었고, 데어데블의 닌자 집단 '핸드'에 대응해 '풋 클랜'이라는 닌자 집단도 만들었다. 주인공들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는 과정 자체도 데어데블처럼 한 시각장애인이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고 그것을 한 소년이 구하다 방사능 사고를 당하는 식으로 거의 그대로 갖다 썼다. 거기에 1대 다의 싸움은 '아들을 동반한 검객'을 참고했으며, 리더인 레오나르도에겐 리더답게 가장 전통적인 무기인 검을 두 자루 쥐어주었다. 당시 그들이 아는 쿵푸와 닌자의 모든 것을 응축해 프랭크 밀러같은 에너지 넘치는 액션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름이 문제였다. 닌자라고 해서 일본 이름을 붙일 경우 미국 독자들에겐 오히려 생소해 친근감이 떨어질 거 같았다. 이름만은 한 번 들으면 바로 입에 붙을 수 있는 익숙한 이름을 주고 싶었다. 되도록 일본 이름 쪽에서 좋은 단어를 찾고 싶었지만, 둘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썩 괜찮은 일본 이름이 떠올리지 않았다. 실제로 작품 속에 '하마토 요시', '오로쿠 나기', '오로쿠 사키(슈레더)'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이름을 그런 패턴으로 만들기엔 어딘가 어색해보였다. 그래서 선택한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의 르네상스 화가들 이름. 레오나르도,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마침 당시 만화계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대형 출판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비 출판을 통해서 큰 인기를 얻던 시기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좋아했던 모든 쿵푸와 닌자 관련된 모든 것을 이 만화에 녹여넣고, 자비로 출판해보기로 했다. 각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진 못해서, 둘이 통장을 다 털어도 가진 돈은 700달러가 전부. 케빈 이스트먼의 삼촌에게 1300달러를 빌려서는 20000달러로 3000부를 찍었는데, 내놓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거두었다.
작가들은 있는 돈을 다 털어, 빚까지 내어 첫 이슈를 자비출판했지만, 그게 성공하리라는 큰 기대감을 갖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 후속 이슈를 준비하지도 않았고, 첫 이슈에 닌자 거북이의 탄생부터 슈레더의 죽음까지 모든 것을 다 넣어 이야기를 완결시켰다.
뉴욕의 하수구에 사는 네 마리 거북이, 이 넷의 스승은 '스플린터'라는 쥐다. 거북이와 쥐들은 모두 방사능 물질로 인해 사람처럼 변한 돌연변이들이다. 스플리터는 본래 일본의 아주 유명한 닌자 '하마토 요시'가 기르던 애완용 쥐였는데, 워낙에 머리가 좋아서 우리 안에 갇힌 채 주인의 인술 수련 모습을 보며 인술을 터득했다. '하마토 요시'는 일본 최대의 닌자집단 '풋 일족'에서 가장 뛰어난 닌자였는데, 일족 내에 '오로쿠 나기'라는 이름의 다른 닌자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다. 특히 두 사람은 '탕센'이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가운데 놓고 다투었는데, 사실 탕센은 처음부터 하마토 요시에게 마음이 있었다.
오로쿠 나기는 질투심이 치솟아 견디지 못한다. 탕센을 찾아가 마음을 바꿀 것을 강요하다 거절당하자, 내가 못 가진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게 하겠다며 탕센을 폭행한다. 때마침 나타난 하마토 요시는 폭행당하는 연인의 모습에 극도로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오로쿠 나기를 때려죽인다. 이유가 어떠하든 같은 일족을 죽인 죄. 그것은 닌자에게 크나큰 수치였다. 하마토 요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할복하여 수치를 씻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연인과 함께 도망치는 것. 요시는 연인 탕센과 애완용 쥐를 데리고 뉴욕으로 도망쳐 무술도장을 차린다.
죽은 나기에겐 사키라는 이름의 7살짜리 동생이 있었다. 어린 동생은 큰형의 관 앞에서 복수를 맹세하고 죽기살기로 수련한 끝에 불과 18세 나이에 모든 닌자들 중 가장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였다. 풋 일족은 뉴욕에 일족의 지부를 세우고 그곳을 오로쿠 사키에게 맡긴다. 뉴욕의 풋 일족은 암살 외에도 마약 밀수, 무기 밀수 등 각종 어둠의 범죄에 손을 뻗치며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4년 여간의 시간이 흘러 뉴욕 풋 일족이 튼튼한 조직을 갖추고, 사키는 '슈레더'라는 이름을 취한다.
사키는 하마토 요시와 그 아내 탕센을 죽여 마침내 원수를 갚는데, 요시와 사키의 싸움 중에 집의 실내 집기들이 다 부서지면서 쥐가 있던 작은 우리도 부서졌다. 주인을 잃은 쥐는 골목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를 짚고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일 뻔하던 중, 마침 한 소년이 달려들어 그를 구출한다.(데어데블 오리진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옴). 그 순간 차에 실려있던 통 하나가 굴러서 하수구에 떨어진다. 마침 하수구 입구 옆에 한 소년이 거북이 네 마리가 든 어항을 들고 있었는데, 그 통에 맞아 어항이 깨지고, 통과 거북이 네마리 모두 하수구 아래 떨어진다. 방사능 물질에 노출된 거북이와 쥐는 조금씩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쥐는 자신의 주인의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익힌 인술을 이들 네 마리 거북이에게 전수해주었고, 거북이들은 스승의 뜻에 따라 살인자 오로쿠 사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닌자 거북이는 슈레드를 죽여 복수하고는, 드디어 슈레더를 이름처럼 갈갈이 찢어버렸다고 복수를 완성한다.
첫 이슈의 임팩트가 엄청나. 후속작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하자, 두 작가는 바로 다음 이슈 준비에 들어간다. 머리를 맞댄 끝에 이번에는 닌자 거북이가 인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조력자 한 명을 붙여주기로 한다. 그 조력자의 성별은 일단 여성,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결정이 되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이름이 문제였다.
그때 케빈 이스트먼이 고교시절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이름이었던 '에이프릴'을 갖다 쓰자고 제안하고 거기에 '오닐'이라는 성을 붙여 '에이프릴 오닐'이라는 이름이 완성되었다. 첫 만화는 컬러가 아닌 흑백이었기 때문에 에이프릴의 인종이 잘 구분이 되질 않는데, 사실 이스트먼의 옛 여자친구는 블랙 히스패닉이었다고.
둘째 이슈에서는 마블을 모티브로한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악당 이름은 '백스터'이고, 마블 판타스틱 포의 백스터 빌딩과 같은 모양의 빌딩도 등자하며, 울트론 얼굴모양을 한 로봇도 등장한다.
국내 출간된 그래픽 노블 중에는 예전에 출간된 작품으로 사이먼 비즐리 그림의 '바디카운트'라고 있고, 또 비교적 최근작으로는 배트맨과 닌자거북이의 크로스오버를 그린 작품이 있는데, 이거는 전체 2권 중에 1권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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