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이날은 1990년 5월 17일에 세계 보건기구(WHO)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서 시작이 되었다. 또한 2004년 5월 17일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미국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래서 여러모로 성소수자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는 날이다.
DC코믹스에서도 이날 중요한 날이다. 1940년 '그린랜턴'이 '올 아메리칸 코믹스 16호'로 세상에 처음 데뷔한 날이기기 때문이다. 최초의 그린랜턴의 이름은 앨런 스콧인데, 80년대에 앨런스콧의 아들과 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을 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이렇다. 앨런스콧은 골든에이지 시대에 로즈라는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로즈는 이중인격을 갖고 있었다. 아주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인격과 굉장히 포악한 범죄자의 인격 두 가지. 사랑이 많은 인격은 로즈, 범죄자의 인격은 쏜. 장미와 가시 양면의 인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앨런 스콧과 로즈는 서로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로즈는 두려움이 생겼다. 나의 이면에 존재하는 쏜의 인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을 해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결국은 남자도 아이들도 다 버리고 떠나게 된다. 앨런과 로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쌍둥이 남매였는데, 이 아이들은 양부모 밑에서 성장을 하고, 나중에 자라서 초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이 중에 남자아이는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또 아이를 떠맡아 기른 양어머니가 괜찮은 사람도 아니었다. 알콜중독자에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하고, 그러니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여자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90년대 넘어가면서 작가들은 앨런 스콧의 아들을 게이로 만든다. 여성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동성 친구에게 더 끌리는 면 때문에 고민하고 치료사를 찾아서 상담하고 하는 모습들이 만화 속에 등장한다. 이 캐릭터 이름이 옵시디언(Obsidian)인데, 이 당시에 이런 묘사는 꽤나 논란을 불렀다. 정치적 올바름에 근거한 설정 변경을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반대로 기존의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 단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억지 변경이라는 주장도 강했다. 팬들이 해당 이슈가 나오자마자 DC 편집부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옵시디언은 다른 만화에서도 동성 연인을 갖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2006년엔 동성 연인과 입을 맞추는 장면까지 묘사가 되었다.
이렇게 초대 그린랜턴 앨런 스콧과 관련된 캐릭터, 앨런 스콧의 아들이 이미 게이로 묘사되고 있던 차에, 2012년 앨런스콧 또한 '어스 2'라는 DC코믹스 만화에서 '이 캐릭터는 원래 게이였습니다'라고 선언하게 된다. 이것도 계기가 뭐냐 하면 미국 여러 주에서 동성 결혼 인정하는 주들이 점점 늘어서 2011년에 뉴욕주가 동성결혼을 인정한 흐름 위에 있었다.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해서 뉴햄프셔, 코네티컷, 아이오와, 버몬트, 그다음으로 뉴욕. 이렇게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뤄졌는데. 그러면서 문제가 된 거 하나가 뭐냐 하면 '성패트릭 데이' 퍼레이드였다. 성패트릭데이는 뉴욕의 대표적인 축제. 그 상징이 바로 '녹색'인데, 이 퍼레이드와 성소수자들 사이에 90년대 초부터 갈등이 있었다.
1990년에 WHO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며 질병코드 삭제한 다음해, 1991년에 성소수자들이 우리도 성패트릭데이 퍼레이드에 참가하겠다 주최 측에 참가 신청을 냈는데 거부를 당한다. 성패트릭은 가톨릭 성인인데, 동성애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들의 참가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뉴욕 시장이 1990년에 취임한 데이빗 딘킨스였는데, 사실 이 사람은 당시 뉴욕 한인들에게는 최악의 시장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뉴욕의 한인 청과상에서 아이티 출신의 흑인 여성이 물건을 훔쳤다가 가게 종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을 했는데, 이때 시에서 꾸린 진상조사 위원회가 제대로 진상조사를 못하고, 허위증언도 막 나오고 그런 상황에서 한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한다고 하여 대대적으로 불매운동이 이뤄졌었다. 그래서 한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면서 시청 앞에서 가서 시장이 같은 흑인이라고 너무 수수방관하는 거 아니냐, 적극적으로 갈등해결에 노력을 해라, 시위를 한 결과 시장이 마지못해 나와서 상황이 매듭지어졌었다고. 당시 이렇게 커졌던 한흑 갈등은 1992년 LA에서 터진 LA폭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쨌건 성패트릭 데이 참가를 원하는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는 딘킨스 시장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었다. 그러면 내가 당신들과 함께 걷겠다. 그래서 참가를 했는데, 동성애 반대하는 시민들이 술병 던지고 욕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2011년 뉴욕주의 동성결혼 합법화의 역사는 1991년 성패트릭데이 행진 현장에서 받았던 핍박의 역사랑 연결이 된다. 그러다보니 성패트릭데이의 색깔 '초록색'이 갖는 상징성이 있었다. 성소수자가 초록색을 입는 것은 이 사회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12년 DC코믹스에서는 이런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DC를 대표하는 녹색 히어로, 그린랜턴 '앨런 스콧'을 게이라고 선언한다. 만화 세계관에서 앨런 스콧은 히어로 커뮤니티 속에서 가장 위대한 멘토들 중의 한 명이었으니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만화속에서 앨런 스콧은 1940년대를 살았던 인물.
그런데 2014년에 실제로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미국 공군에서 군종병으로 근무했던 '휴버트 에드워드 스파이스'라는 분이 자신의 제대 기록을 변경해달라고 소송을 한다. 이유는 이분이 '게이'라는 이유로 강제 제대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은 뉴욕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된 해이기 전에 군에서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공개적 군복무를 금지했던 'Don't Ask Don't Tell' 정책이 폐지된 때이기도 했기에 가능했던 소송이었다. 스파이스는 불명예제대를 했기 때문에 아무런 보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의료도 안 되고 연금도 안 되고, 흔한 교통 할인 입장료 할인도 안 되고, 국립묘지에도 못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동성 배우자는 똑같은 군인 출신이었지만 명예제대를 하고, 이런 혜택들을 받고 있었다. 군복무를 성실히 이행했느냐 안 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성적 정체성에 따라 보훈 자격을 박탈하는 거는 부당하다면서. 스파이스는 2017년 91세 되는 해에 승소한다.
2023년 DC에서는 '앨런 스콧 : 그린랜턴'이라는 작품을 내기 시작한다. 총 6이슈 미니시리즈이고, 앨런 스콧의 40년대 군생활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2024년 5월 현재 시점에 5이슈까지 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앨런 스콧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남으로 인해서 군에서 '블루 디스차지(Blue Discharge)'를 받는 내용이 그려진다. 일명 '청색 제대'. 당시에 미군이 동성애자들을 불명예제대시키던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당시는 군에서 동성애자로 밝혀지면 일단 이들을 환자로 취급해서 강제로 군 병원에 입원시켜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고, 그런 후엔 '복부 부적합'으로 판정하여 강제제대를 지켰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병사들이 이렇게 청색제대를 당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지나 1990년 5월 17일 WHO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까지 동성애는 계속 질병으로 취급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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